[기고] 사드협상은 끝이 났는가?
상태바
[기고] 사드협상은 끝이 났는가?
  •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 승인 2017.12.05 09: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는 지난 30여 년 간 어떤 인식을 갖고 중국을 대했는가?

 

▲ 이병우 중국시장경제연구소장

한 해가 저물어 간다. 석양의 노을도 일찍 잠들어 버리고 밤바람은 차갑다. 연말이 우리 앞에 다가오는 중이다. 인간의 삶은 늘 어수선하다. 계절에 따라 온갖 핑계를 달아 분주하게 움직인다. 간신히 숨을 돌리다 보면 12월이 된다. 어쩌면 마지막 달은 더 마음이 분주할지도 모른다. 일 정리도 해야 하고 사람 정리도 해야 한다. 우리는 뭔가를 정리하면서도 부산을 떤다. 마음이 공허한 사람이 더 난리를 피우는 법이다. 폭풍 같았던 올해가 다 가는 중이다. 가슴 졸이며 북한의 핵실험을 보아야 했고 촛불과 태극기가 진보와 보수, 미래와 과거, 개혁과 답보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의 정신을 혼란하게도 했다. 그 혼란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이런 와중에 중국과의 사드 마찰은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상처의 흔적은 지금도 중국의 한국 교민들과 중국 진출의 문턱에서 좌절한 수많은 기업들의 가슴에 선명하다. 양국의 물밑 협상인지, 중국의 전략적 카드인지는 모르겠으나 거침없었던 사드의 물결은 잠시 소강상태로 접어들고 있다.

우리는 환호했고 중국은 여전히 구체적인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언제 엄습할지 모르는 일말의 불안감이 존재한다는 의미다. 더구나 중국이 단체관광을 일부 해제하면서 롯데 백화점과 면세점의 출입은 금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중국과의 사드 협상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닌가? 아니면 중국인의 협상 매너는 원래 이렇게 더티(Dirty)한 것인가?

대답은 모두 “그렇지 않다”이다. 중국인의 협상 개념은 우리와 다르다. 비즈니스에서의 계약관념도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중국의 협상은 전투의 일종이다. 서양식의 윈윈(Win-Win)의 방식이 아니다. 적대적인 협상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시진핑 주석이 누차 강조했듯이 국가의 핵심 이익에 관해서는 절대 양보가 있을 수 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드 갈등의 합의도 일종의 전략이고 전술이다. 우리 식의 협상개념이 아니다. 애초부터 사드 협상의 원만한 타협과 마무리는 없었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중국에 가서 계약을 체결하고 나면 그 자체를 최종 마무리로 생각한다. 하지만 중국인은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인에게 계약이란 자기에게 유리한 형세를 만든 다음, 상대를 울타리 안으로 끌어드리는 최소의 조치이고 전략적 행위다. 사실, 본격적인 작업은 그 후부터 진행된다. 그래서 중국인의 계약서는 합동서(合同書)가 된다. 계약서와 합동서는 한자(漢子)적인 의미가 다르다. 우리의 통념은 “계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상대는 배상을 해야 함”을 말한다. 그러나 중국인의 합동서 개념은 그런 뜻이 아니다. 서로 합의를 했다는 뜻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합의는 나중에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약서나 합동서 한 장으로 모든 협의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중국인들에게 정말로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다.

중국 사회는 개인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외교 협상과 사업의 결론도 협상 당사자가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사회가 아니다. 따라서 협상 결렬로 인한 모든 책임을 개인이 지는 곳도 아니다. 협상은 단지 완전한 승리를 위한 중간 단계이고 전술이기 때문에 협상의 끝은 없다. 서로 가격을 다 정해 놓고 계약서에 날인까지 하고도 계속 가격 인하를 요구하는 사람들이다. 서로 합의하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합동서의 개념이지 우리의 계약 개념이 아니다. 사드의 갈등도 앞으로 이렇게 계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중국 사람이 나빠서도 아니고 매너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우리가 중국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에 이런 오해(?)와 서운함이 생기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우리도 상대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알맞은 전략을 짜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와의 신뢰 관계다. 목숨보다 체면과 신의를 중시하는 사람들이 중국인이다. 물 밑에서 지속적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사업관계도 마찬가지다. 공개된 자리에서 계약서를 백 장 써 봐야 효력이 없다. 은밀하고 조용한 자리에서 깊은 대화를 하며 우정과 신의를 다지는 일이 계약서보다 더 중요하다. 상대가 나를 믿을만한 친구로 생각할 때까지 계약의 내용은 아무 소용이 없다. 자꾸 계약서에 서명을 요구하는 사람은 하수 중의 하수다. 지켜지지 않을 약속에 백 날 도장을 찍어야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중국인들은 신뢰가 형성되지 않은 사람과 계약을 한다는 것을 아주 위험하게 생각한다. 정 매달리면 “예의 삼아” 해줄 수는 있지만 애초부터 그걸 지킬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대신에 빈천지교불가망(貧賤之交不可忘 가난하고 빈천한 때에 사귄 벗은 잊으면 안 되고) 조강지처불하당(糟糠之妻不下堂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며 고생한 아내는 내치지 아니한다)의 관념이 강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지난 30여 년 간 어떤 인식을 갖고 중국을 대했는가? 진심으로 중국 파트너와의 우정과 신의를 사업상의 손해보다 더 소중하게 생각했는가? 아니면 협상과 계약을 우습게 아는 무식한 사람들이라고 비난만 하지는 않았는가?

“떠돌이 이발사의 한 쪽 멜대만 뜨겁다”는 말이 있다. 협상과 약속은 한 쪽만 난리를 치며 서두른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아무리 중앙에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도 시골에서 올라온 허름한 옛 전우를 융숭하게 대접하고 그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중국인의 의리고 신의다. 그런 의미에서 이마트와 롯데마트의 중국 철수는 마음에 걸린다. 아프고 힘들었어도 참고 견디며 좀 더 신뢰를 쌓았더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오늘 밤도 바람이 아주 차다. 그러나 찬바람이 언제까지 계속 불어오는 것은 아니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여름이 오는 법이다. 우주의 질서는 변함이 없다. 우리네 인생도 아마 이럴 것이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