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민이야기] 북미 유학생들의 잡지 ‘우라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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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이민이야기] 북미 유학생들의 잡지 ‘우라키’
  • 김동근 한국이민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승인 2018.02.14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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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민사박물관 소장자료 소개 시리즈…⑮

1880년대 유길준ㆍ윤치호ㆍ서재필ㆍ서광범 등을 시작으로 1910년 30명 수준에 머무르던 미국유학생은 1919년 77명으로 증가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국 여러 지방에 소규모 유학생 모임이 등장하고, 1919년 1월에는 재학생들을 중심으로 북미조선유학생총회(이하 유학생회)가 결정되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 유학생 숫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유학생회는 미국 내 최대 규모의 유학생조직으로 발전하며 1925년 《우라키》를 창간하여 1937년 7호까지 발간되었다.

언뜻 들어서는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운 《우라키》라는 잡지명은 Rocky산맥을 가리키는 것으로 초기 유학생 및 이민자들은 ‘R’발음을 제대로 내기 위해 ‘우’라는 말을 앞에 붙여 발음하여 원음에 가깝도록 하였다.

잡지명을 로키산맥으로 한 이유를 2호의 편집후기에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첫째, 우라키는 북미의 척추로 북미에 있는 유학생회를 우라키 세글자가 잘 표현할 수 있다. 둘째, 우라키는 본래 암석이 많다는 뜻이니 우리 유학생들의 험악한 노정을 잘 묘사하고 있다. 셋째, 본지의 특징으로 우라키 산과 같은 순결ㆍ장엄ㆍ인내 등의 기상을 흠모하여 우라키라 불렀다.’

▲ 《우라키》 6호. 뉴욕한인교회에서 편집되어 한성도서주식회사를 통하여 1933년 발간되었다. (자료 한국이민사박물관)

《우라키》의 내용은 필자들의 전공을 중심으로 종교철학ㆍ교육ㆍ사회과학ㆍ자연과학ㆍ문예ㆍ기사 등의 분야로 나뉘어져 다양한 내용들이 소개되었다. 당시 한국인이 접하기 어려운 선진문명을 소개하고 여러 분야에서 미래사회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계몽주의적 성격을 보여주었다.

같은 유학생회에서 발간한 《영문월보》가 유학생들과 외국인을 위한 홍보용으로 제작된 것과 반대로 《우라키》는 국내 동포를 대상으로 제작되어 총판매처는 서울과 평양 등 국내에 두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였다.

다만 당시 일제강점기라는 상황과 맞물려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민족문제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다루기 어려웠다. 몇몇은 필명을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방법을 사용하였고, 일제 당국에 의해 일부가 삭제되어 발간되기도 하였다.

귀국 이후 다방면에 진출하여 한국사회를 이끌어 간 재미유학생들의 생각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라키》는 근현대사 연구에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이 잡지는 유학생에 대한 분석만이 아니라 이민사 연구와 동포사회 연구에도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특히 한국이민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우라키》 6호에는 고봉경의 ‘미국이민역사와 장래의 정책’과 같은 기고문이 실려 한국인뿐만 아니라 중국인과 일본인의 이민동향, 미국정부의 이민정책 변화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재미동포사회와 미주지역의 한인독립운동, 임시정부와 관계된 동향을 파악할 수 있는 여러 정보들이 들어 있으며, 편집인과 편집장소가 뉴욕한인교회와 연관성이 있는 등 이민자들의 기독교사에서도 중요한 정보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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