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프랑스 20년 ‘꺾인 꿈을 기억해’ 펴낸 이미아 대표
상태바
[인터뷰] 프랑스 20년 ‘꺾인 꿈을 기억해’ 펴낸 이미아 대표
  • 서정필 기자
  • 승인 2018.04.25 0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불 문화 교류 중심에 서서 한국 젊은이들에게 주고 싶은 이야기

▲자신의 첫 책 ‘꺾인 꿈을 기억해’를 펴낸 이미아 ‘한국의 메아리’ 대표

“한인 행사가 있는 곳이라면 휴일도 마다 않고 카메라를 둘러메고 취재를 다녔다. 비록 파리의 한인공관이나 한인업체에 놓이는 무료 신문이었고, 제대로 된 언론사로 인정하는 이들도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근무하는 동안 나는 프랑스의 그 어떤 메이저 언론사 기자보다 더 투철한 프로 정신으로 취재를 했다. 그러면서 프랑스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 다방면을 살펴볼 수 있었고, 나의 심장 안에 방치되어 있던 ‘꺾인 꿈’을 기억하는 시간이 되었다” (이미아 ‘꺾인 꿈을 기억해’중에서)

한불 문화 교류의 중심 역할을 해온 이미아 ‘한국의 메아리’ 대표가 젊은이들을 위한 첫 번째 책 ‘꺾인 꿈을 기억해’(2018, 넥서스북스)를 펴냈다. 이 책에는 프랑스의 이방인으로 한국의 민간 외교관으로서 한불 문화 교류의 중심에 서기까지, 저자의 열정적인 삶의 기록과, 자신과 같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경험이 가득 담겨 있다.

4울 27일 열릴 출판기념회 준비 등을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는 이미아 대표를 만나 그녀의 첫 책 ‘꺾인 꿈을 기억해’에 대해 꽤 긴 대화를 나눴다.


▲자신의 첫 책 ‘꺾인 꿈을 기억해’를 펴낸 이미아 ‘한국의 메아리’ 대표

Q. 첫 책 ‘꺾인 꿈을 기억해’의 출간에 맞춰 고국을 찾으셨습니다. 우선 책 소개부터 부탁드립니다.
이미아 대표(이하 이) : 이 땅의 젊은이에게 제가 주고 싶은 메시지를 모은 책입니다. 프랑스 생활 20년을 넘기면서 책을 한 번 내보라는 제안을 몇 번 받았었는데요. 얼마 전에 겪은 에피소드 하나가 책을 서둘러 펴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Q. 아 어떤 일이었는지요?
이 : 제가 지난해 11월에 6군단 진군부대 장병들 앞에서 강연을 했어요. 제 국내 첫 강연이었지요. 이틀에 걸쳐서 진행됐고요. 그런데 강연을 막 시작하려는데 장병들이 피곤한지 저에게 집중을 잘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막 집중하라고 시켰어요,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거든요.

Q. 그게 뭐였습니까?
이 : 이 청년들한테 제가 20년 전에 프랑스로 갔다가 갑자기 머리가 다 빠져서 2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가 그걸 고치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서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대한민국 청년들, 요새 힘 많이 빠지는 시절이잖아요. 이 청년들에게 제 이야기를 해주면 힘을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 이미아 대표의 첫 책 ‘꺾인 꿈을 기억해’

Q.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실 수 있을지요?
“여러분에게 뭔가를 가르치려고 온 것이 아니고 부탁하러 왔습니다. 좀 더 오래 산 사람으로 그냥 부탁하러 왔어요”

이렇게 입을 뗀 뒤에 헬조선이라고 너무 나라에 대고 손가락질 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게 나라냐”라고 손가락질만 하지 말라고 했어요. 하루에 시리아에서만 8,000명의 난민이 발생한다고. 그들에겐 “이게 나라냐”라고 말할 나라도 없다고...

그리고는 내가 나라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먼저 고민하라고 말해줬어요.

이역만리 프랑스 땅에서 불어에 능통하지도 않고 이유 없이 머리가 다 빠진 30대 초반 여자가 ‘꺾인 꿈’을 찾아 인생의 목표를 다시 세우는 과정을 설명하면서요.

그리고 제가 여기 온 것은 한 명이라도 제 이야기가 가슴에 박혀서 열심히 노력해서 인생이 바뀌는 것을 바라고 온 것이고 오늘 이 자리가 여러분들의 삶에서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지요.

이어 올해 초에 페이스북 메시지를 하나 받았는데 그 메시지가 저로 하여금 책을 써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했습니다.

미국에서 7년 동안 유학생활을 한 장병이었는데 자기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시기에 제 강연이 찾아왔다는 겁니다. 군대 생활을 하며 내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고 살았는데 제 강연을 듣고 자기가 얼마나 소중한 사람이었는지 다시 떠올리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그 메시지를 읽고 보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제 이야기를 들려줘야겠다는 ‘소명의식’같은 것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출판사와 3월 1일에 계약을 했고 4월 23일에 책이 출간됩니다.

▲ 본지 이형모 대표와 환담하는 이미아 대표

Q. 프랑스에 가시자마자 탈모 증상까지 겪으시면서 정말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이 : 이미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 저는 성공해서 기울어진 집안을 다시 일으키겠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어요. 아는 프랑스어라고는 ‘봉주르(Bonjour, 안녕하세요)’와 ‘메르시(Merci, 감사합니다)’밖에 없을 정도로 대책 없이 떠난 유학이었지요. 그런데 얼마 안 돼서 머리가 빠지기 시작한 거예요.

Q. 그 원인은 어떤 것이었는지요?

이 : 일단 너무 잘해야겠다는 마음때문에 생긴 스트레스 때문인 것 같아요.  하지만 병원에서도 원인을 정확히 찾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원형 탈모라면 관리하면 다시 머리가 나기도 하는데 아니었어요. 매일매일 엄청난 양이 빠지고 그러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병원에서도 도저히 원인을 모르니 아무래도 큰 병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날 사진관 가서 영정 사진을 준비할 정도였으니까요. 이제 갓 서른 넘어서 프랑스에서 뭔가 도전해보려고 하는데 머리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다 빠지니 저말 힘들더라고요.

그 일을 겪고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고 나니 성공에 대한 기준이 바뀌었지요. 머리가 한 번 다 빠지고 나니 무서울 게 없더라고요.. 제가 가지고 있던 ‘꺾인 꿈’이 기억났습니다.

Q. 그 뒤 프랑스에서의 삶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이 : 파리 9대학에서 문화예슬경영 석사학위를 받고 에브리 에손느 국립대학 한국어 겸임교수를 맡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인가 강의를 하는데 이렇게 매년 같은 책, 같은 커리큘럼으로 한국문화를 가르칠 것을 생각하니 갑자기 암담해지더라고요. 

사실 프랑스에서 국립대학교 교수를 하면 더 이상 제 삶의 안정성을 위해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충실히 가르치던대로 가르치면 되니까요. 또 본국에서 고위 관계자들이라도 방문하면 행사 섭외 0순위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렇게 살기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두 나라 문화 교류를 위한 일을 하고 싶더라고요.

프랑스에 ‘한국문화’를 체계적으로 더 널리 알리고 싶은 꿈을 꾸게 된 거지요. 2002년 3월에 프랑스 정부 공식허가를 얻어 한불문화교류단체 ‘한국의 메아리’를 설립해 두 나라 문화 교류를 위해 살고 있습니다.

2010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예공로훈장(슈발리에)’도 받았고요. 

Q, 올해 남은 계획은 어떻게 되십니까?
이 : 일단 눈 앞에 다가온 출판기념회가 가장 큰 행사입니다. 27일 금요일 저녁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출판기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로 돌아가서는 가을 열릴 대규모 한국-프랑스 문화 교류행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 책이 우리 청년들에게 꼭 힘이 됐으면 합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