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언어적 측면에서 본 아랍국가 진출 요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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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언어적 측면에서 본 아랍국가 진출 요건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
  • 승인 2018.05.10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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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표준 아랍어 보다는 각국 대중 아랍어가 실용적이다"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연구소 소장(아랍어 언어학 박사)
몇 년 전 한국의 청년실업 해결에 도움을 주고자 국내의 어느 대학 교수가 “중동이 블루오션이다”고 하면서 청년들이 중동에 나가기를 고취하는 강연을 했다. 강연 요지는 지금 중동의 상황이 바뀌고 있으니 관심을 가져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중동은 여행 제한 지역과 여행 금지 지역이 가장 많을 때였다. 그리고 몇 년이 흘렀는데 지금 한국 청년들이 아랍 국가에 진출하여 소기의 성과를 보이고 있는가? 사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아랍에는 청소년층이 노인층 인구보다 더 많다. 그래서 실업과 미취업 인구가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일부 아랍인들은 외국인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앗아갔다고도 하고 아랍어를 옹호하는 무슬림들은 영어 수업을 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아랍 국가에 진출할 만큼 언어 숙달이 준비되어 있는가?

아랍은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뉜다. 이집트의 우측은 동부 아랍 국가들이고 이집트의 좌측에 있는 리비아의 서쪽은 모두 마그립 국가들이라고 부른다. 22개 아랍 국가들이 아랍어를 모어로 사용하지만 동부 아랍 국가들은 영어가 제2외국어이고 마그립 국가들에서 제2외국어는 프랑스어이다. 따라서 한국 청년들이 이 두 지역 중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언어 소통을 위한 훈련이 달라져야 한다. 특히 걸프 지역은 제2외국어가 영어이지만 파키스탄, 인도, 필리핀 등지에서 온 근로자들이 많다.

아랍 국가는 아랍 전체가 사용하는 현대 표준 아랍어 또는 현대 문학적 아랍어가 있고, 아랍 각국마다 해당 국가의 대중아랍어(암미야)가 있다. 일상적인 대화를 하려면 그 나라의 생활 아랍어에 해당하는 대중 아랍어를 숙달해야 하는데 국내 아랍어과에서 대중 아랍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곳은 없다. 대중 아랍어 문제를 해결해야 한국 청년들이 아랍에 진출하는데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언어 소통이 안 되면 해당 분야에서 리더 그룹에 끼지 못하고 지시를 받는 대상이 되고 만다. 더군다나 아랍 무슬림들 중 현대 표준 아랍어를 전문가 수준으로 숙달한 사람들은 국민들 중 소수에 해당한다. 모든 아랍인들은 현대 표준 아랍어가 아닌 대중 아랍어를 구사한다.

그런데 국내에서 아랍에 진출하는데 대중 아랍어 숙달이 안 된 상황이라면 영어나 프랑스를 적극 권한다. 물론 필자는 아랍어 전공자이기 때문에 아랍어 숙달자가 아랍 국가에 진출하기를 원하지만 현실적으로 국내에서 대중 아랍어를 배울 수 있는 기관이 없다. 우리나라에는 소수의 고등학교에서 아랍어를 배우고 대여섯 대학교에서 아랍어를 배울 수 있지만 현대 표준 아랍어를 학습하기 때문에 아랍 시장과 건설 현장 그리고 판촉 활동에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아랍 국가에서 문학적 아랍어 사용이 도약하고 있다

최근에 제 7차 아랍어 국제회의가 4월 중순에 두바이에서 열렸다. 이번 국제회의에서 알제리의 쌀리흐 박사는 “아랍어가 지난 10년 동안 상당한 발전을 이룩했다”고 했다. 2000년 이전에는 아랍어로 된 사이트가 없었다. 2012년 인터넷 사용자가 2천만을 넘지 못했으나 지금은 아랍어로 된 네트워크 사용자가 2억 명이 넘고 있다고 했다. 이같이 아랍인들이 인터넷망을 적극 사용하면서 아랍어 사용자가 엄청 늘었다고 한다. 그러나 동부 아랍 국가들에서 대학의 교육 언어는 영어이고 마그립 국가들의 대학에서는 프랑스어가 교육언어이다. 이들 대학에서 아랍어는 인문학 전공자에게만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랍어 구사자들이 영어나 프랑스어 사용자들 앞에서는 천대받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이집트에서는 그동안 영어로 수업해온 사립 초등학교에서 아랍어를 사용해야 한다고 지난 달 교육부가 발표하자 자녀들을 사립학교에 보낸 부모들은 취업 시장에서 영어가 필요한데 왜 아랍어만 배워야 하느냐고 불만을 쏟아냈다.

알제리의 아랍어 최고위원회 의장 쌀리흐 박사는 영어나 프랑스어 등 세계화 언어에 대응할 수 있는 언어는 문학적 아랍어(현대 표준 아랍어)라고 주장했으나 영어나 프랑스어와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되고, 이들 외국어가 아랍인의 정체성을 갖게 하는 언어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다시 말하면 영어나 프랑스를 아랍 대학생들이 익혀서 이들 언어 사용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사용하지만 아랍인의 정체성을 갖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랍 국가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있고 또 관광지역에서는 외국어 사용자가 절실히 필요하기 때문에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좋다고 했다. 수단처럼 중국인들이 유전 사업에 참여하자 카르툼 대학교에 중국어과를 개설한 바 있다.

아랍어, 학문의 언어냐 취업과 통역을 위한 언어냐?

우리나라가 아랍어 교육과정의 개편을 서두를 때가 왔다. 만일 청년들의 취업을 활성화하려면 아랍어과에서 대중 아랍어 수업 시간을 확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처럼 현대 표준 아랍어만을 가르친다면 아랍 정상 통역이나 아랍인 고위층 회담의 통역사, 외교관의 언어 훈련 그리고 대학 교수나 학자들을 양성하는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아랍 시장 개척에 참여할 청년들에게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아랍인들이 매일 사용하는 언어는 현대 표준 아랍어가 아니고 대중 아랍어와 지역 방언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의 한국적 상황에서는 해당 아랍 지역에 나가서 2년간 대중 아랍어를 습득해야 할 판이다.

알제리의 쌀리흐 박사는 “신이 아랍어를 보호하신다”고 하면서 아랍어를 이대로 내버려 둘 것이 아니라 아랍인들도 세계화에 맞서서 적극적인 전략과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아랍어를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머리를 맞대고 협의를 하자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아랍어 수업이 단순히 현대 표준 아랍어로 제한되어서는 안 된다. 꾸란 연구를 위해서는 고전 아랍어 문법과 의미 간의 차이를 배워야 한다. 만일 국내에서 대중 아랍어를 배울 기관이 없다면 적어도 2년은 20여 아랍 국가에 파견하여 해당 국가의 대중 아랍어를 습득해야 한다. 이집트인들 중 영어 구사자는 외국인들이 현대 표준 아랍어를 구사하면 영어로 대화하자고 나선다.

영화나 드라마의 아랍 수출에도 해당 국가의 대중 아랍어로

아랍 국가의 영화관에 가면 영화의 음성 녹음이나 외국 영화의 자막이 해당 국가의 대중 아랍어로 처리되어 있다. 아랍인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쉬운 아랍어로 음성 녹음을 하고 자막 처리를 하는 것이 아랍 관객들의 호응을 더 받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드라마를 수출할 경우 해당 국가의 대중 아랍어로 자막 처리를 해야 한다. 시리아 대중 아랍어는 알제리 대중 아랍어와 다르고, 모로코 다리자는 예멘의 대중 아랍어와 다르다. 그러나 아부다비의 지오그래픽 채널은 현대 표준 아랍어로 녹음하고 역사에 대한 영화도 쉬운 현대 표준 아랍어로 그리고 어린이 드라마는 현대 표준 아랍어로 녹음한다.

결국 청년들의 아랍 진출을 위해서는 문학적 아랍어(현대 표준 아랍어나 고전 아랍어)보다는 아랍 각국의 대중 아랍어를 먼저 습득하는 것이 실용적이고 좀 더 시간이 주어진다면 문학적 아랍어 학습으로 확대하는 것이 적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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