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이민이야기] 잡지 ‘잔소리’와 재일동포 2세대
상태바
[오래된 이민이야기] 잡지 ‘잔소리’와 재일동포 2세대
  • 김동근 한국이민사박물관 학예연구사
  • 승인 2018.05.18 12: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이민사박물관 소장자료 소개 시리즈…⑱

1945년 8월 15일, 태평양 전쟁은 종결되었지만 해방 후 조국으로의 귀환이 유예된 조선인들이 재일동포 사회를 형성하였다. 이들의 귀환은 송환정책의 불안정, 남북분단, 한반도의 경제적 낙후 등의 이유로 점점 더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남은 한인들은 일본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만 했다. 그 과정에서 재일조선인연맹과 같은 단체가 결성되고, 우리말과 우리글을 가르칠 민족학교가 생겨났다. 그리고 1945년 11월 <고려문예>를 시작으로 <민주조선>,  <진달래>와 같이 재일사회의 담론을 주도하는 잡지들도 탄생하였다.

이 시기 재일동포 1세대에게 일본생활은 ‘임시로 머무는 삶’이었고, 따라서 잡지의 제목도 고국을 기억하는 방향으로 지어졌다. 주 내용은 남북분단의 현실 속에서 조국분단에 따른 이념갈등, 일본사회로의 동화를 둘러싼 외부적 갈등, 그리고 그 해결방안을 둘러싼 내부적 갈등이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은 1970년대에도 이어졌다. <마당>, <삼천리>와 같이 재일동포 1세대가 주축이 된 잡지에서는 재일한국인과 재일조선인 사이의 이념 갈등, 조선인과 일본 사이의 갈등과 이를 해결하는 방안, 국적문제가 중요한 논제로 다루어졌다.

▲ 재일동포 2세대 잡지 <잔소리> 1호, 2호, 5호 (자료 한국이민사박물관)

그러나 일본정부의 귀화정책 및 남북한의 대립 개선 등에 대한 징후가 보이지 않자 이러한 생각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라 재일동포 사회의 주축이 된 2세대에게는 점차 일본이 정주의 장으로 인식되었다. 그에 따라 북한과 남한이라는 현실적으로 선택하기 어려운 길이 아닌 재일한인으로서의 삶 혹은 생활인으로서의 삶을 모색하는 제3의 길을 지향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그 결과는 1세대를 향해 ‘잔소리 하지 말라’ 하며 나타난 잡지 <잔소리(ちゃんそり)>로 나타난다.

<잔소리>는 재일동포의 삶을 담아온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오덕수 등 2세대를 중심으로 1979년 9월 창간되었다. 이 잡지는 논설기사를 비롯하여, 앙케이트와 인터뷰, 독자투고 등을 통하여 재일동포 2,3세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고자 노력하였다.

창간호에서는 ‘지금 우리들은 세계의 어디쯤에 있는가.’라는 글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탐구하였다. 5호에서는 특집기사를 통하여 ‘자기 운명을 스스로 생각하며 살아가야할 때를 맞이하고 있다’라고 주장하여 재일한인 각자가 주체적인 삶의 방향을 찾아갈 것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전 세대의 이념문제에 대해서 “북이냐, 남이냐”라는 질문을 받은 편집위원이 “동이다!”라고 대답했다는 일화에서 보듯이 기존의 갈등구조에서 벗어나 자신들만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였다.

즉, 1세대와 달리 조국을 경험하지 못한 2세대는 일본과 조국의 경계지점에서 개개인의 삶을 강조하며 독자적 정체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고, 이 부분에서 창간호부터 1981년 12월 8호까지의 짧은 역사를 가진 <잔소리>는 재일동포 사회의 변화를 관통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