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마그립 국가와 무슬림 형제단 (6)
상태바
[기고] 마그립 국가와 무슬림 형제단 (6)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 연구소장
  • 승인 2018.11.06 17: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무슬림 형제단은 과격한 정치적 이슬람 단체인가?

▲ 공일주 중동아프리카 연구소장
무슬림 형제단은 과격한 정치적 이슬람 단체인가?

마그립 국가에서 무슬림형제단은 각국마다 독특한 환경에서 서로 다른 정치적 역할을 보여 주었다. 오늘날 마그립 국가에서의 무슬림 형제단은 이슬람주의자들이고 정치에 종교를 이용하는 정치적 이슬람을 표방한다. 무슬림 형제단은 전 세계에 지부를 두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와 아랍에미리트 그리고 모리타니아에서는 무슬림 형제단을 테러 집단으로 분류하지만 터키와 카타르는 무슬림 형제단을 지원한다.

아랍 이슬람 국가에는 7세기부터 시작된 칼리프라는 정치적 제도가 있었다. 전 이슬람 세계(공동체)의 리더이고 종교적 계승자가 칼리프였다. 칼리파(caliphate)는 무슬림 공동체가 세운 정치적-종교적 국가를 가리킨다.

케말 아타투르크의 칼리파제도 폐지

1924년 터키의 케말 아타투르크의 칼리파제도의 폐지된 후 무슬림들은 터키의 폐지 결정에 따를지 아니면 새로운 칼리프를 지명할지를 결정해야 했다. 이집트에서는 알아즈하르의 일부 리더들이 파루끄 1세 왕이 칼리프 직위를 맡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를 반대한 알아즈하르의 쉐이크 알리 압드 알라지끄는 칼리파 제도는 이슬람 종교와 상관이 없고 인간이 만든 형식이라고 했다. 그러나 무슬림들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1926년 카이로에서 칼리파제 회의(Caliphate Conference)를 열고 이슬람에서 칼리파제가 필요한 것이라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그러나 이런 결의안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또 다른 이슬람 회의가 1926년 메카에서 열렸고 1931년에는 예루살렘에서 열렸다. 역시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집트에서 무슬림 형제단 운동 창설

칼리프 제도가 이스탄불에서 폐지된 후 몇 년 안 가서 이집트에서 다른 리더들이 이슬람의 통치(후큼 알이슬람)를 부르짖었다. 그것이 1928년 하산 알반나가 창설한 무슬림 형제단 운동이었고 왕정제도와 충돌했다. 무슬림 형제단은 이집트 밖으로 퍼져가서 이제는 가장 크고 가장 오래된 이슬람주의자(islamist) 운동이 됐다.

하산 알반나는 전 세계 이슬람주의자 운동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정치적 행동주의(political activism)가 이슬람 구제 활동과 결합된 운동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이슬람적인 선행을 퍼뜨리다가 곧 정치에 가담해 이집트에서 영국식민지를 쫓아내는데 동참했고 모든 서구의 영향을 제거하려고 한다. 무슬림형제단은 민주적인 원리에 찬성하지만 무슬림 형제단의 목적들 중의 하나는 이슬람 율법이 지배하는 국가를 창설하는 것이다.

사이드 꾸뜹의 ‘이정표’ - 급진적 이슬람 이데올로기 출현

1954년 가말 압둔 나세르 대통령 암살기도가 실패한 다음에 무슬림 형제단은 수천 명이 감옥에 가거나 고문을 당했다. 무슬림형제단은 이때부터 지하활동으로 들어갔다. 무슬림 형제단의 이데올로기가 한 번 더 바뀌는데 그것은 사이드 꾸뜹의 이정표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자힐리야(서구 사회는 물론 이슬람 율법이 적용되지 않는) 사회가 급격히 변화되도록 지하드 사용을 촉구했다. 결국 이정표라는 책은 급진적인 이슬람주의자 집단에게 영감을 주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알카에다와 IS조직이다. 사이드 꾸뜹의 이슬람을 ‘참 이슬람’이라고 생각하면 잘못된 이슬람 이해이다.

이슬람 전문가들은 무슬림 형제단이 시대가 달라지면서 정적을 제거하는 방법을 발전시켜왔다고 했다. 그 중의 하나는 사이드 파이즈(sayyid Faayz)의 제거에서 보듯이, 조직 내부에서 지도부의 방침에 장애가 되는 자나 의견 차이를 보이는 사람을 암살시키는 것을 종교적 차원에서 허용하기 시작했다. 조직원들에게 공포심을 유발해 조직이 일체 단결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무슬림 형제단의 암살은 살인을 하거나 또는 국가나 사람을 카피르(『한국의 이슬람』 책 참조)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암살 시도가 아랍과 이슬람세계와 유럽에서 증가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았다(알샤르끄 알아우사뜨, 10월 12일 2면). 두 번째 무슬림 형제단의 특별 조직은 국가 체제를 전복시킬 목적으로 쿠데타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테러가 무슬림형제단의 지하드 작전의 일부가 돼서 최종 목적은 국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것이다. 무슬림형제단은 자신들이 ‘이슬람 국가’를 건설하는 임무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하부 조직의 암살과 폭력이 테러집단의 전략으로 확대

무슬림 형제단의 암살은 정치적인 측면과 종교적인 측면을 갖는다. 종교적으로는 이슬람법적 근거에서 암살을 방조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무슬림 형제단의 다아와(초청)에 방해를 놓는 자를 무슬림형제단의 특별조직이나 비밀 조직이 암살한 예인데 아흐마드 알카진다르, 마흐무드 파흐미 알누끄라쉬가 암살당했다.

이집트에서 1980~90년대 무슬림 형제단의 하부 조직이 암살에 가담했으나 오늘날 시리아와 예멘에서는 무슬림 형제단이 직접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 이처럼 국가마다 달라지는 특수성과 시간과 장소라는 환경에 따라 형제단이 다르게 활동하고 있다. 무슬림 형제단에게 폭력은 고정된 원칙이 아니라 시간과 장소라는 환경과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아랍에서는 무슬림형제단이 민족적인 이상에서 종교적 강풍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무슬림 형제단의 특수 조직의 폭력은 무슬림 형제단의 이론가이고 정신적 아버지인 사이드 꾸뜹의 사상을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무슬림 형제단은 폭력과 반격과 지하드에서 변화하는 그들의 사상이 반영되고 있다.

최근 존 볼턴 국가 안보 보좌관은 테러 대처에 대한 미국의 전략에 대해 언론인들에게 말하면서 “극단적인 이슬람주의 테러 집단(알자마아트 알이슬라미야 알이르하비야 알무타따리파)이 미국의 국경에 가장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오마바 전 대통령은 이슬람이나 무슬림들을 테러와 연계시키지 않으려고 무슬림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궤변을 늘어놓았다. 볼턴이 말한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알이슬라미인 알무타따리핀)”이란 말은 평화적인 무슬림과 테러리스트를 구분하고자 했던 오바마의 말과 정면 대치되는 표현이다(알샤르끄 알아우사뜨, 10월 6일 4면 참조).

테러는 이슬람 국가 내부의 시민들 간의 전쟁

요르단 국왕 압둘라 2세는 테러에 대하여 “테러는 이슬람 내의 한 국가 안에서 시민들 사이의 전쟁(하릅 아흘리야 다킬 알이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의 위협(알타흐디드 알이슬라미 알무타따리프)은 이데올로기의 여러 형태 중 한 형태”라고 했다. 요르단이 금년에 이슬람주의자들의 공격을 받은 후 국왕이 스스로 자백하는 말은 이슬람 국가 안에 무슬림 사이에 전쟁이 일고 있는데 그것은 극단적인 이슬람주의자의 위협이 있고 이 위협은 이데올로기의 문제라고 했다.

사실 이슬람은 이념적이고 종교적이고 정치적이고 사상적이므로 이슬람 국가마다 그 성향이 다르고 무슬림 개인마다 이슬람에 대한 이해가 다르다. 우리나라 어느 대사관의 홈페이지 ‘문화 정보’ 메뉴를 가보니 ‘이슬람 바로 알기’ 등 이슬람에 관한 글들이 실려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글들 중에는 이슬람 용어에서 정확성이 결여되거나 현대 이슬람 동향과 다른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