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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산책] 명도전과 고조선의 강역

기사승인 2018.11.27  17: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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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형모 발행인
명도전은 연나라의 화폐인가?

명도전은 고대 중국 연나라의 화폐라고 알려져 있다. “명도전은 전국시대 연나라(기원전 323~222)에서 만들어진 청동제 화폐로서, 손칼 모양의 납작한 표면에 명(明)자 비슷한 문양이 양주(陽鑄)되어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송호정 ‘한국고대사 속의 고조선사’)

이것이 명도전에 대한 정설이다. 2005년도에 발행된 고등학교 국사교과서에도 명도전 사진 밑에 ‘명도전,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연나라, 제나라에서 사용한 청동화폐’라는 설명이 달려 있다.

명도전이라는 이름은 일본학자가 붙였고, 연나라 화폐라고 규정한 것은 중국학자라고 한다. 연나라 화폐라고 한 근거는 칼처럼 생긴 이 청동화폐가 고대 연나라 지역에서 주로 발굴된다는 데 있다.

실제로 명도전이 주로 발굴되는 곳은 만주 일대와 압록강과 청천강 사이 지역이다. 이 지역은 고조선의 강역인가? 연나라의 강역인가? 그렇다면 고조선과 연나라의 국경이 어디인가가 중요해진다.

2001년 보진재 출판사의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는 중국 전국시대(기원전 403~221) 때의 연나라 국경이 압록강까지 이르렀던 것으로 표시되었다. 2001년 천재교육 출판사의 ‘역사부도’는 연나라와 고조선의 국경이 북경을 기점으로 나뉘고 있다.

보진재의 ‘압록강’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의 주장과 일치한다. 압록강 서쪽이 연나라이고 청천강 이남이 고조선이라는 식민사학자들의 주장을 따르면, 명도전은 연나라 화폐라는데 논리적 결함이 없다.

명도전은 고조선의 화폐

그러나 천재교육 출판사의 ‘북경이 고조선과 연나라의 국경’이라면 ‘명도전은 연나라의 화폐’가 되기 어렵다. 명도전의 발굴지역 대부분이 고조선의 강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조선 영토에서는 명도전 이외의 고조선 화폐는 지금까지 단 한 개도 발굴되지 않았다. 명도전이 고조선 지역에서 발굴된 것이고, 고조선 지역에서 유통되었다고 볼 수 있다. 명도전이 고조선의 화폐일 수밖에 없는 첫째 이유다.

둘째, 고조선의 청동기 문화는 다른 고대국가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되는 청동검은 매끈하고 디자인이 세련되었으며, 청동거울은 고도의 기술을 요하는 난이도 높은 제품이다. 이런 기술을 가지고 고조선이 청동 화폐를 만들지 않았다면 이상한 일이다.

셋째, 연나라가 존속했던 기간은 불과 100년 남짓인데 비해 광대한 고조선 지역에서 출토되는 명도전 화폐량이 너무 많은 것이다. 고조선이 2,000년 동안 사용한 고조선 화폐라고 해야, 명도전 출토량이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다.

넷째, 당시 연나라는 100년 동안 지속된 역사에서 고조선(BC2333~BC426)의 계승국가인 대부여(BC425~BC238)와 80년 간 전쟁을 치룬 적대국이었다. 대부여가 자국 화폐 없이 적국의 화폐를 사용했으면 국가경제는 성립할 수 없다.

진시황은 기원전 221년에 중국 역사상 최초로 통일제국을 완성한 후, 각 지방마다 달랐던 화폐를 ‘반량전’으로 통일했다. 그러나 당시 고조선과 대부여를 계승한 북부여 지역에서 반량전을 대량으로 사용한 흔적이 없다. 적국의 화폐인 까닭이다.

명도전 출토지역과 고조선 위치

러시아 학자 부찐이 쓴 ‘고조선 역사-고고학적 개요’에 그려진 고조선 영토는 기원전 3세기 전까지는 서쪽으로 북경 서북쪽 난하에 이르렀고, 기원전 3세기 이후 요하 지역까지 밀렸다고 본다.

명도전 유적의 위치를 표시한 지도는 서울시립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박선미 연구원이 2000년에 발표한 석사학위 논문 ‘기원전 3~2세기 고조선의 문화와 명도전 유적’에 나온다. 이 논문은 ‘패수는 요하’로 보고, 명도전이 출토되는 유적 중 요하 동쪽의 유적은 연나라의 유적이 아니고 고조선 고유의 유물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박선미 연구원의 논문 중 ‘명도전 출토지역 분포도’와 부찐의 고조선 영역 지도는 거의 일치하고 있다. 명도전은 연나라가 아닌 고조선 영토의 전역에 걸쳐 고르게 출토되고 있다. 그리고 난하 이남에서는 남쪽으로 갈수록 발굴 양이 희소해진다.

길림대학 장보촨 교수의 논문

길림대학 역사학과 장보촨(張博泉) 교수가 2004년 흑룡강성 고고학계 학술지 ‘북방문물’에 ‘명도폐 연구속설’을 발표했다.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 무렵까지 만주 지역에는 3종의 화폐가 있었다. 즉 첨수도, 원절식도폐, 방절식도폐가 그것이다. 이들 화폐 가운데 첨수도는 고죽 또는 기자 관련 족의 화폐이고 원절식은 (고)조선의 화폐이며 방절식은 연나라 화폐이다.” 3가지 중에 첨수도와 원절식 명도전은 고조선 화폐라는 주장이다.

패수의 정확한 위치

러시아 학자 부찐은 기원전 3세기 고조선의 서쪽 국경을 북경 위쪽 ‘난하’라고 설명한다. 박선미 연구원은 패수가 국경인데, ‘패수는 요하’라고 주장한다. 식민사학자들은 청천강을 국경이라고 말한다. 패수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인가?

휴애거사 범장이 쓴 북부여기 상권에는 해모수 단군 기사 말미에 “기해 38년(BC 202) 연나라의 노관(BC 247~?)이 다시금 요동의 옛 성터를 수리하고 동쪽은 패수(浿水)로써 경계를 삼으니 패수는 곧 오늘의 ‘난하’다.”라고 썼다.

고대 중국의 수로를 기술한 ‘수경주’(기원 515)에 ‘패수는 내륙에서 발원하여 동쪽 바다로 들어간다’고 기록했다. 요동, 요서지역에서 동쪽 바다로 들어가는 강은 난하가 유일하다. 따라서 패수는 난하인 것이다. 요하는 남쪽 바다로, 압록강, 청천강, 대동강은 모두 서쪽 바다로 들어간다. 식민사학자들이 ‘패수는 대동강’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없는 왜곡이다.

*성삼제 <고조선, 사라진 역사>에서 발췌
 

이형모 발행인 dongponews@hanmail.net

<저작권자 © 재외동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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