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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긍정의 언어

기사승인 2018.11.28  12:2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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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새벽에 일찍 깨면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새벽에 머릿속을 파고드는 생각은 온통 잡념(雜念)입니다. 잡념과 씨름하다가 일어나면 하루가 불편하고 무겁습니다. 저는 잡념이 가득할 때면 주로 복식호흡을 합니다. 예전에 배운 단전호흡(丹田呼吸)을 해 보는 건데 잘 하고 있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평소의 호흡과 반대로 하는 것이어서 약간 힘이 들기도 합니다. 언제나 반대로 하는 건 어렵습니다. 습관을 거스르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도 복식호흡에는 잡념이 조금씩 사라지고 스르르 잠이 다시 드는 효과는 있습니다. 그리고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복근이 생기는 부수적 효과도 있습니다. 잡념이 사라지지 않으면 꽤 오랜 시간을 복식호흡에 집중하게 되는데 그러다보니 뜻밖에 배의 근육이 단단해졌습니다. 뱃살도 좀 빠졌고요. 잡념도 때론 긍정적입니다. 몸 깊은 곳에 에너지가 모이는 뜨거움도 느끼게 됩니다.

어느 날인가 또 새벽에 깨어 괴로운 생각 속에 떠돌다가 문득 긍정적인 어휘를 떠올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겁니다. 긍정적 어휘가 우리 몸에 밝은 에너지를 줄 수 있겠죠. 회복탄력성과 관련된 책에서 감사한 일을 일기처럼 적는 일만으로도 심리의 회복탄력성이 생긴다는 연구를 본 적도 있습니다. 마찬가지의 측면에서 본다면 좋은 어휘를 떠올리는 건 나의 상태를 가볍고 밝고 맑게 만들어줄 것이라 기대가 되었습니다.

어떤 어휘가 먼저 떠올랐을까요? 저에게는 ‘행복하다’가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늘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잠깐 미소가 입가에 생겼다가 씁쓸함으로 바뀌었습니다. 왜냐하면 늘 행복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잠깐의 행복과 긴 괴로움이 우리의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행복하다의 뒤로 ‘기쁘다, 고맙다, 반갑다, 좋다’ 등의 단어가 줄을 잇네요. 얼굴에 미소가 커집니다. 긍정적인 단어가 참 많네요. 기쁜 일이 많다면 행복하겠죠. 고마운 일이 많은 것도 좋은 일이죠. 반가운 사람을 만날 생각을 하니 설렙니다. 다 좋은 일이네요.

그런데 예쁘다, 사랑하다에서 단어를 잇지 못하고 잠시 멈췄습니다. 생각이 많아집니다. 사랑하다는 긍정적인 단어일까요? 당연히 긍정적일 것 같은데 왜 사랑을 떠올리면 아프기도 할까요? 사랑하는 일은 기쁘면서도 아픈 일입니다. 사랑은 때로 우리를 아프게 합니다. 어쩌면 사랑하기 때문에 더 아프기도 합니다. 곧이어 ‘보고 싶다’, ‘그립다’는 단어가 이어집니다. 분명히 긍정적인 단어인데 점점 더 아파옵니다. 긍정이 늘 기쁜 건 아닙니다.

그립다는 말에서 ‘슬프다’로 넘어갑니다. ‘아프다’로 넘어갑니다. 이제 ‘서럽다’도 따라옵니다. 힘들다는 말도 어렵다는 말도 눈물과 함께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그러면서도 다시 고맙다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다시 행복하다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우리의 긍정에는 아픔과 고통이 묻어 있습니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긍정의 언어에 담긴 슬픔을 만나고 나서 긍정이 더 커졌습니다.
 

조현용 교수 iiejhy@khu.ac.kr

<저작권자 © 재외동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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