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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왜 이렇게 급한가?

기사승인 2019.02.07  12:0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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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급(急)하다’라는 말은 좀 재미있는 말입니다. 한자 ‘급’에 ‘하다’가 붙어서 생긴 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에는 이렇게 1음절 한자어에 하다가 붙는 예들이 많습니다. 이런 어휘를 통해 한자가 우리 속에 광범위하게 들어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후(厚)하다/박(薄)하다, 강하다/약하다, 망하다/흥하다’처럼 반의어가 나타나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런데 ‘급하다’의 경우는 ‘완하다’가 없다는 점에서 좀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급하다’의 반대는 ‘느긋하다’나 ‘천천히 하다’ 정도일 겁니다. 완하다는 없이 급하다만 한자어 표현으로 나타나는 것은 우리에게 급한 상황이 훨씬 많았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빨리빨리도 마찬가지겠죠.

저는 원래 성격이 급한 편은 아닙니다. 오히려 약간은 느긋한 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쁘게 지내는 것에 대해서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쉬면서 생각하고,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머리도 몸도 쉬어야 빈 공간이 생기고 글과 생각이 맑아집니다. 여유라는 말은 단순히 느린 것이 아니라 숨을 쉰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걱정은 사람을 급하게 만듭니다. 초조(焦燥)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입니다. 초조는 불에 그을리고 모두 말라버린 것 같은 느낌의 단어입니다.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서 노심초사(勞心焦思)하게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도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어쩌면 괜히 걱정만 한 셈이지요. 물론 걱정이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비한다는 점에서 실수를 줄이는 일이기도 합니다만 지나친 걱정이 사람을 급하게 만듭니다.

급한 일은 보통 미루어 두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미리 차근차근 하지 않았기에 앞에 닥치게 되는 겁니다. 급하게 일을 하지 않으려면 미루지 않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미루지 않아야 급해지지 않습니다. 이 말을 달리 말해서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제 일은 어제, 오늘 일은 오늘, 내일 일은 내일 하는 게 좋습니다. 어제 일을 계속 곱씹을 필요도 없고, 내일 일을 미리 당겨서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과거는 죽은 채 묻어두고, 오지 않을 미래를 믿지 말고, 산 현재에 활동하라는 말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그런데 한 번 실수를 하고 나거나 뜻하지 않은 일을 겪게 되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비슷한 실수나 문제가 생길까 두려워지는 겁니다. 미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어쩔 수 없습니다. 경험은 사람을 단단하게도 하지만 약해지게도 합니다. 조금 더 담대해 질 수도 있을 텐데 걱정이 한가득 차오르게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하루 동안 해야 할 일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머릿속에 오늘 일만 떠오르는 게 아닙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동시에 떠오르고, 덩달아 걱정거리가 되어 남습니다. 아직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도 모르는 일까지 한꺼번에 나타납니다. 그러니 복잡할 수밖에요. 답답한 일입니다.

그 때 제 머릿속과 가슴속에 소리가 들렸습니다. ‘왜 이렇게 급한가?, 뭐가 그리 급한가? 오늘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면 되는데 왜 어쩔 줄 몰라 하는가? 내일 일은 내일 다시 하고, 오늘을 기쁘게 맞이하면 되는데 왜 이리 힘들어 하는가?’ 내가 급하게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하루를 고마워하며 재미있게 지내는 연습을 해야겠습니다.

한편 오늘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을 때 텔레비전에서 노인들이 서로 대화하는 장면을 보고 웃게 되었습니다. 노인들이 뭐가 그렇게 급하냐고 타박을 하면서 힘들면 내일 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너무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겠죠. 오늘 일도 정말 힘들면 내일로 미루어 두는 것도 한 방법일 듯합니다. 종종 오늘의 할 일도 내일로 미루는 마음이 좋아 보이네요.
 

조현용 교수 iiejhy@khu.ac.kr

<저작권자 © 재외동포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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