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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호머 헐버트 박사 70주기 추모식

기사승인 2019.08.09  15: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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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고종황제의 밀사…독립운동가, 교육자, 한글연구 언어학자, 역사가, 선교사

   
▲ 한국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유공자 호머 B. 헐버트 박사의 70주기 추모식이 8월 9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내 100주년 선교기념관에서 열렸다.

대한제국 개화기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유공자 호머 B. 헐버트 박사의 70주기 추모식이 8월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내 100주년 선교기념관에서 열렸다.

사단법인 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회장 김동진) 주관으로 열린 이날 추모식에는 허현 광복회 부회장, 노웅래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서울 마포갑), 미첼 모스 주한미국대사관 공보공사, 임우철 애국지사(전 독립유공자협회장),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유동균 마포구청장, 권재일 한글학회 회장,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김낙중 국립한글박물관 관장, 오준 세이브더칠드런 회장, 이형모 재외동포신문 대표, 김삼철 기념사업회 고문 등 회원들과 원근 각지에서 모인 시민들 400 여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 개회선언 ▲ 국민의례 ▲ 기도(신현주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감독) ▲ 약력보고 ▲ 추모식사(김동진 헐버트기념사업회장) ▲ 추모사(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김원웅 광복회장) ▲ 영상시청 ▲ 인사말(권재일 한글학회 회장, 노웅래 국회의원, 유동균 마포구청장) ▲ 헐버트 아리랑 합창(역사청소년합창단) ▲ 예사 ▲ 헌화 ▲ 폐회선언의 순서로 진행됐다.

   
▲ 한국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유공자 호머 B. 헐버트 박사의 70주기 추모식이 8월 9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내 100주년 선교기념관에서 열렸다. 추모사 하는 김동진 기념사업회장

김동진 기념사업회장은 추모식사에서 “오늘 우리는 23살의 젊은 나이에 조선 땅을 밟아 한민족과 영욕을 함께 하며 63년 동안 한국 독립을 위해 일생을 바친 헐버트 박사의 서거 70주기를 추모하고자 이 자리에 모였다. 오늘 일본의 작금의 행태를 보며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일 당일에 헐버트 박사가 미국 언론에 ‘한국의 소멸’이라는 글을 기고한 것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회장은 “헐버트 박사는 기고문에서 ‘일본의 가면이 벗겨졌다. 일본 외교는 이중성이 전부다. 그들은 항상 처음에는 달콤한 말로 이웃나라를 돕는다고 하고 종국에는 그 나라를 갉아 먹는다. 이제 모든 나라는 일본의 사기 외교에 속지 말아야 한다.’고 일본을 비판했다. 그리고 일본의 정한론의 배경은 한국의 군사력을 얕잡아 보기 때문이라며 한국은 앞으로도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힘을 길러 일본의 사기 외교에 대응해야 한다고 호소했다”고 헐버트 박사의 생각과 활동을 소개했다.

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은 추모사에서 “23세에 고종황제의 초청으로 이 나라에 온 헐버트 박사는 한국인들을 가르치고, 한글을 연구하셨으며, 한국을 세계에 알리려고 애쓰셨다. 일제의 침략에 맞서 모든 어려움을 감수하고 독립운동가의 길을 걸으셨다.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미국에 알리고자 노력하셨던 선생께서는 고종황제에게 헤이그 특사 파견을 제안하며 특사 3인보다 먼저 네덜란드로 건너가 한국의 독립의지를 세계에 알렸다”고 말하며 헐버트 박사의 한국에 대한 사랑과 독립운동의 열정을 추모했다.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미첼 모스 공보공사가 대독한 추모사에서 “헐버트 박사는 한국의 똑똑한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역사와 언어학 연구를 통해 한국에 전 세계를 소개했다. 그리고 한국인의 천부권리인 자유와 자결권을 옹호했다. 우리가 양국 관계를 기념하는데 있어, 양국 국민 간에 우정을 쌓는데 선구자 역할을 한 호머 헐버트 박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고 강조했다.

   
▲ 한국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유공자 호머 B. 헐버트 박사의 70주기 추모식이 8월 9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내 100주년 선교기념관에서 열렸다. (윗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오진영 서울보훈청장, 미첼 모스 공보공사, 허현 강복회 부회장, 노웅래 국회의원)

김원웅 광복회장은 허현 부회장이 대독한 추모사에서 “헐버트 박사는 고종황제의 헤이그 특사로서 책임감과 희생정신을 보여 주셨고,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를 펴내 한국인에게 세계정세를 소개했으며, 미국언론 기고문과 논문으로 ‘한글의 과학성과 탁월함’을 논증하셨다. 그리고 살아생전 평생토록 일본의 만행을 고발하고 한국의 독립을 지원하는 강연과 연설로 독립운동에 참여하셨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묻히기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는 유언을 남기신 헐버트 박사님은 몸도, 마음도, 영혼까지도 모두 완전한 한국인이십니다. 당신이 한국인이셔서 우리 모두는 매우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고 전했다.

노웅래 국회의원은 “한국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서 침략원흉 이등박문을 처단하시고 한국인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워 주신 안중근 의사께서 뤼순 감옥에서 일본 관헌에게 말씀하셨다. ‘헐버트는 한국 사람이라면 하루도 잊어서는 안 되는 은인이다’ 이 한마디에 헐버트 박사의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사랑, 한국 독립에 대한 불굴의 열정을 보는 안중근 의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라고 소개하면서 헐버트 박사를 추모했다.

   
▲ 한국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유공자 호머 B. 헐버트 박사의 70주기 추모식이 8월 9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내 100주년 선교기념관에서 열렸다.

권재일 한글학회장은 “주시경 선생은 동지들과 한글학회를 만드셔서 오늘 우리들이 한글을 이처럼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런데 헐버트 박사는 주시경 선생의 스승으로 한글 띄어쓰기를 권유하고 한글의 과학성과 탁월함을 가르치셨다. 그러니 우리들도 모두 그분의 은공을 잊어서는 안되겠다”고 말하며 헐버트 박사를 추모했다.

유동균 마포구청장은 “헐버트 박사가 잠들어 계신 이곳 양화진 선교사묘원이 마포구여서 자랑스럽다. 시의원 시절부터 오랫동안 추모식에 참석했는데 오늘은 마포구청장으로 참석해 더욱 기쁘고 감회가 새롭다. 헐버트 박사의 고귀한 독립운동 업적, 한국과 한국인 사랑이 다음 세대에게도 전해져 평화와 통일의 미래를 여는 힘이 되기를 기원한다”고 추모했다.

   
▲ 한국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유공자 호머 B. 헐버트 박사의 70주기 추모식이 8월 9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내 100주년 선교기념관에서 열렸다. 역사청소년합창단의 헐버트아리랑 노래.

추모 인사에 이어 새터민 출신 김다혜 이화여대 학생이 ‘헐버트 박사에게 드리는 편지’를 낭독했고, 기념사업회에서 백영찬 자문위원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어서 역사청소년합창단(단장 박용진) 19명 단원이 헐버트아리랑과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불러 주었다. 끝으로 해양경찰관현악단이 주악을 연주하며 모두들 헐버트 박사 영정에 헌화함으로 추모식을 마쳤다.

 

 헐버트 박사(Homer B. Hulbert) 약력

한국 이름 : 흘법(訖法) 또는 할보(轄甫)
1863년 1월 26일 : 미국 버몬트주에서 아버지 칼빈 헐버트(목사,대학총장)와 어머니 매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남
1884년 : 다트머스(Dartmouth) 대학 졸업, 유니온 신학대학(Union Theological Seminary)입학
1886년 7월 5일 : 육영공원(Royal English College) 교사로 내한
1888년 9월 : 메이 한나(May B. Hanna)와 결혼
1891년 : 최초의 한글 교과서 <사민필지> 출간
1891년 12월 : 미국으로 귀환
1893년 10월 : 감리교 선교사로 재 내한. 배재학당, 삼문출판사(Trilingual Press) 책임자/동대문교회 담임 목사
1897년 : 한성사범학교(현, 서울대학교) 교습, 대한제국 교육 고문
1900년 : 관립중학교(현, 경기고등학교) 교관
1903년 : YMCA 창립총회의장-YMCA 창립선포
1905년 : <한국사(The History of Korea)> 출간
1905년 : 고종의 특사로 미국 방문. 국무장관을 통해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고종 친서 전달
1906년 : <대한제국의 종말(The Passing of Korea)> 출간
1906년 6월 : 헤이그만국평화회의를 위한 고종의 특사로 임명됨
1907년 7월 : 헤이그에서 한국인 특사들을 돕고 평화클럽에서 일본의 불법성 폭로
1907년 7월 : 일본의 박해로 미국으로 돌아가 스프링필드(Springfield)에 정착
1909년 8월~11월 : 일시적 방한, 고종 황제로부터 내탕금 인출에 관한 전권 수임
1907년~1945년 : 셔토쿠어(Chautauqua)강좌 등 미국 전역에서 한국의 독립을 역설
1919년 : 3 ·1혁명 직후 미국 상원 외교관계위원회에 한국 독립 호소문 W‘ hat about Korea?’제출
1942년 : 한인자유대회(Korean Liberty Conference)에서 “한국 독립은 천부적 권리” 라고주장
1949년 7월 : 한민족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민족이라고 증언
1949년 7월 29일 : 대한민국 국빈으로 초정되어 40년 만에 한국에 귀환
1949년 8월 5일 : 내한 일주일 만에 여독으로 청량리 위생병원에서 서거
1949년 8월 11일 : 대한민국, 사회장 영결식 거행. 양화진에 안장
1950년 3월 1일 :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태극장)’ 추서
1999년 8월 5일 : 김대중 대통령의 휘호를 받아 50년 동안 비어있던 묘비에
‘헐버트 박사의 묘’라는 묘비명을 새김. 기념비 건립
2013년 7월 : 대한민국, 외국인 최초의 ‘이달의 독립운동가’에 선정
2013년 8월 : 경북 문경시, ‘문경새재헐버트아리랑비’ 제막
2013년 12월 : 서울시, 한글 역사인물 ‘주시경-헐버트’ 상징 조형물 종로구에 제막
2014년 10월 9일 :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 추서
2015년 10월 7일 : (사)서울아리랑페스티벌, 제1회 ‘서울아리랑 상’ 추서
 

   
▲ 한국 문명화의 선구자이자 독립유공자 호머 B. 헐버트 박사의 70주기 추모식이 8월 9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합정동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 내 100주년 선교기념관에서 열렸다. 헐버트 박사의 묘.

이형모 발행인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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