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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여여(如如)의 창(窓)

기사승인 2019.08.12  12: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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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광호 아트 글라스 작품전(8.14~9.15)을 앞두고

   

이 세상 어디에나 있었고,
안과 밖이 따로 없어
열린 적도 없고, 닫힌 적도 없었다.

창(窓)은 환기, 채광, 혹은 장식 등 다양한 목적과 그 기능을 위해 건축물의 벽이나 천장에 만든 구조물이다. 창은 ‘열고, 닫음’으로 소통하고, ‘안과 밖’을 구분하는 경계의 기능을 지닌다. 원시인의 움집에서부터 노아의 방주(창 6:14-16)와 우주선에 이르기까지 인류 건축의 역사에서 창의 기능과 그 개념의 변천이 곧 건축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이 마음의 창’이듯 ‘창은 건축물의 혼과 눈’이 될 것이다. 오관이 열려 있음으로 생명이 생명일 수 있듯이 ‘건축물의 생명도 그 건축물의 창’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창은 유리 발전의 역사와 그 궤적을 같이 한다. 투명과 반투명 유리에서 최근의 건축용 색유리(Architectural Art glass)의 등장으로 그 가능성은 더 확장되었다. 건축의 역사가 창의 개념을 바꿨듯이 창의 역사가 건축의 개념을 바꿔 놓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대건축에서 창의 기능은 단순한 물성의 기능을 넘어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의미로 그 개념을 확장시켜가고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건축물에 부속된 창의 개념을 넘어 이제 창(Window)은 인류문명의 모든 철학과 종교, 과학에서 실재와 그 실재를 표상하는 상징이 되었다. 인간정신의 세계도 다를 바가 없다. 인식의 창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에 따라 인간의 삶의 가치와 목적의 방향이 정해진다. 올바로 봄, 정견(正見 Right View)은 지혜의 출발이요, ‘실상을 있는 그대로 봄’에서 모든 종교적 가치가 형성되고 철학과 예술이 시작되고 전승된다.

회화의 역사를 보면, 화가 폴 세잔(Paul Cezanne,1839-1906)은 풍경을 바라보면서 “풍경이 내 속에서 자신을 생각한다. 나는 풍경의 의식이다.”라고 했다. 무슨 뚱딴지같은 생각이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삼매경에서 물아일여(物我一如)의 체험을 말한 것이라 할 것이다. 감각적 유물론자 메를로 퐁티(Merleau Ponty,1908-1961)는 이를 ‘몸의 나르시시즘’이라 했다.

데카르트 이후 사르트르에서 들뢰즈(Deleuze,1925-1995)에 이르기까지 현대 대부분의 유물론적 철학자들은 ’몸과 살‘을 동원해 인간의 시적 감성과 모든 예술적 능력을 이해하고 설명하려 했다. 마침내 우주의 정신과 물질도 ‘살의 변형태’로 모든 사물을 ‘감각 덩어리(masso du sensible)’라 했다. (오늘날 감각적 몸의 문화와 물질 중심의 유물주의와 너무나 깊게 연관되어 있다.)

메를로 퐁티에게 순수 객관적인 것은 없고, 주관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주관은 의식이나 정신이 아니라 ‘몸’이다. 후대 푸코나 들뢰즈의 사상은 ‘퐁티의 살존재, 감각적인 유물론’에 영향을 받았다.

오랜 인류문명의 창을 깨부수고 과학적 이성이 촉발시킨 현상적 결과로부터 얻어진 ‘새로운 창’을 만든 결과였다. ‘세상만물이 그냥 생겨나서 존재한다’는 이들의 인식은 그 자체로 내재적 모순을 지닌다.

그러기에 안이든 밖이든 간에 이 창 앞에서 ‘존재의 원인’을 향해 ‘질문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가 된다. 이와 같이 내재적 모순으로 점철된 현대예술은 한결 같이 비관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와 그 실존적구조가 같은 예술은 어떤 모양으로든지 인류문명은 물론 한 개인의 역사 마져도 ‘구원 받아야 할 존재’로 인식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현대미술은 인류문명의 근간을 지탱해 왔던 종교의 역할을 예술에서 그 정신적이고 영성적인 각성을 통해 새로운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는 것이다. 종교적이라 이름할 수 있는 ‘정신적이고 영성적인 역할’이란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보면 하느님 안에 있는 세계(초월적 내재)와 세계 안에 있는 하느님(내재적 초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가톨릭 사제로서 그림을 하는 나에게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환경은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정신적이고 영성적인 정체성의 문제를 나는 이 의미 안에서 묻고 고민해 왔다. 그러나 교회에 철저히 순명을 약속한 내가 이 문제를 화두로 삼고, 고민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녹록치 만은 않은 일이었다. 주어진 일에 순명을 첫째로 하고 그림 작업은 늘 그 다음의 과제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간판에서 벽화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 모든 것’(?)이 될 수 있도록 요청에 부응해 살아가는 ‘교회미술의 구멍가게 역할’을 선택하고 자처하며 살아왔다. 예술이 내 인생의 목적이 되었다면 이러한 행위는 어리석은 짓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성급하고 부족한 내 작업의 세계를 늘 지켜봐 주시고 격려해 주신 모든 선하신 이웃들의 도움과 함께 창조적 자유를 허락한 자모이신 교회의 자비와 은혜에 깊이 감사한다. 지난 40여 년 동안 나는 주로 Architectural Art glass를 연구하고, 작업을 해 왔다. 많은 분들의 도움으로 국내에서 최초로 국제적인 수준에 이르는 작은 공방을 유지하고 있고, 그 작업의 결과물도 조금 남기게 되었다.

그 동안 수많은 창에 스테인드글라스를 디자인하고 만들면서 고전이고 전통적 미의 개념인 선명하고 눈부시게 빛나는 명료성과 완전성, 조화로운 비례를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삼아왔다. 그러나 나를 만족시켜준 결과물은 없었다. “예술이란 행복에 대해 지켜지지 않을 약속을 할 뿐”이라는 어느 미학자의 말로 위안을 삼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내 작업의 대상과 오브제로서의 창을 넘어 내 의식과 인식의 내면에 존재하는 창(窓)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업에 열중하기에 이르렀다.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깨달음’ 같은 것이 왔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물리적이고 물성적인 창이 내면화되고 있음을 의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인식된 것’이 아니라 ‘내면화된 창’에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나의 작업은 물성을 지닌 투명한 유리창 앞에서 열린 또 하나의 창으로 향하는 ‘길 위에 있는 인간(homo viator)’의 삶과 호흡의 흔적이었다. 내 작업 안에 열려진 내면의 창은 사찰의 불이문(不二門)에 문이 달려 있지 않듯이 문 없는 창이요, 안과 밖의 경계가 모호한 회전문이 돌아가듯이 ‘안과 밖’이 따로 없는 창이었다.

그 문은 애초부터 이름 붙일 수 없는 무차별성을 지닌 절대순수의 상징으로 ‘하나’를 향해 열린 창이었다.

‘여여(如如)의 창(窓)이라 명명 해보는 이 창 앞에서 내가 깊은 전율과 감동을 받았던 것은  근현대 서구사상의 악순환을 극복하고, 돌파하는 길희성 박사의 마이스터 엑크하르트(Meister Eckhart(1260-1328)론(심도학사에서의 연구)에서였다. 그 만남은 단테가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를 받을 때처럼 섬광같이 눈부셨다.

“이 하나는 둘이 아니고 나누어지지 않았으며, 다르지 않다는 것. 다른 무엇으로 표현할 길이 없어 ‘하나’라고 명명하는 이 하나는 진리(Logos)요, 하느님의 신성이었다”는 것이다. ‘하나(Unum)’는 전체로서, 밖도 없고 안도 없다는 의미에서 하나이다.

‘하나’는 존재의 충만을 안고 있는 근원적 하나다. 개념 아닌 개념으로서, 언어의 경계에서 어쩌면 ‘하나’라고 말할 수조차 없는 ‘하나’다. 언어가 끝나고 생각이 끊어진 이언절려(離言絶慮)의 세계에 붙여진 그 ‘하나’를 향해 나의 모든 창조적 행위는 ‘끓어오르는(bulitio) 역동적 실체로부터 부여 받은 ‘영혼의 불꽃(Scintilla animae)’이었다.” (길희성 저, ‘마이스트 엑크하르트에서 참조)

나는 지난 20여 년간 ‘진리의 창’, ‘로고스의 암호 (The Code of Logos)’라는 화두를 붙여 작업을 해 왔다. 창이 지니는 적막함과 고요함, 공적(空寂)과 초월성,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있으면서도 없이 계시는 하느님’, 만물 속에 숨어 계신 하느님의 신비한 묘유(妙有)의 배후로서의 하느님을 경외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만물이 그로부터 흘러나와 그로 돌아가는 엑크하르트의 텅 비고, 자유롭고, 순수한 지성으로의 하느님이 또한 ‘나의 하느님이었다’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그림은 나에게 하늘을 향한 노아의 방주의 창과 같았다. 창이 없는 노아의 방주는 죽음의 방주였겠지만, 빛과 공기를 통하게 하는 방주의 창은 하느님을 향해 열린 생명과 희망의 상징이었다.

‘감추어진 신성의 어두움’을 향하여, 나는 이제 내 작업의 종착지를 향해야 한다. 그리고 나는 이 세상 어디에나 있는 창, 안과 밖이 따로 없어 한 번도 열린 적이 없고, 닫힌 적이 없는 적막하고 고적한 창. 그 앞에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죽는 날까지, 황홀한 외로움으로 서성이는 바람처럼 머물다 가기를 원한다.

이 전시는 그 출발을 위한 작은 시그널이 될 것이다. 

청량산 기슭에서,
2019 , 조광호 신부

조광호 신부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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