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칼럼] 한국의 반도체 황금시대는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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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칼럼] 한국의 반도체 황금시대는 언제까지?
  • 이동호 명예기자
  • 승인 2017.09.1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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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의 큰 기회 앞에 선 한국 - 반도체와 원전기술

▲ 이동호 명예기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전성시대

단군이래, 한국의 반도체가 최대의 황금알을 낳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24년 만에 인텔을 제치고 1위로 등극할 추세다. 정주영 현대그룹 산하의 현대전자산업(주)이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재벌 간의 ‘빅딜(Big Deal)’과정에서 현대전자산업은 1999년 LG반도체를 인수하고 현대반도체로 이름을 바꾸면서 흡수합병한다.

그러나 현대그룹의 계열사 간의 지배 구조 변화에 따라 (주)하이닉스반도체로 사명을 변경하고 현대그룹에서 분리되며 채권금융기관들이 대주주가 되면서 2012년 SK그룹이 인수하고 사명을 SK하이닉스로 변경하여 오늘까지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의 한 축을 이어오고 있다. 특히 2006년 10월 중국 장쑤성 우시 시에 준공된 현지생산법인(Hynix Semiconductor(Wuxi)Ltd.)은 중국 최대의 반도체 업체로서 중국 디램시장에서 약 50%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SK그룹의 최태원 회장의 반도체산업에 대한 미래예측이 탁월했음을 보여준다.

반도체 무한수요의 블랙홀 - 클라우드와 자율주행차

반도체 슈퍼 호황의 전망은 아주 밝다. 스마트폰과 컴퓨터 외에도 신규 시장이 급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클라우드(인터넷 저장공간 대여)와 자율주행차는 반도체 수요를 무한정 빨아들이는 새로운 블랙홀이다. 반도체 황금시대임을 부인할 수 없다.

요즈음 세계 시가총액은 애플-알파벳(구글 모기업)-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페이스북 순으로 정보기술(IT) 기업들의 독무대다. 이 가운데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클라우드가 핵심사업이다. 빅데이터 시대를 맞아 이들이 데이터센터를 확장하면서 서버용 반도체 수요가 50% 이상 늘고 있다. 여기에 자율주행차와 사물인터넷 특수도 폭발 중이다. 자율주행차는 주행 중 데이터 처리를 위해 고성능컴퓨터 한 대씩을 장착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국에 반도체 씨를 뿌린 이병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반도체는 한 때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섰던 적이 있었다. 198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 이병철 회장은 83년 2월 반도체 투자를 결심했지만 1984년부터 깊은 불황이 덮쳐와 4달러였던 64K D램이 85년 중반에 30센트까지 떨어졌다. 삼성은 반도체 하나를 팔면 1달러40센트씩 손해가 났다. 또 삼성은 미국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에 특허 배상금으로 8500만 달러(그해 영업이익의 80%)나 뜯겼다. 1986년은 세계 반도체 지각 변동의 한 해였다. 미국 TI가 일본 NEC에 세계 1위 자리를 빼앗겼고, 인텔은 아예 백기를 들고 D램 사업에서 철수했다.

1986년 한국의 국내 분위기는 자동차·건설중장비·발전설비 등에 대한 주요 산업 합리화 조치로 아주 험악했다. 특히 삼성의 반도체 누적적자가 1,300억원 이르자 “삼성이 반도체 때문에 망한다”는 소문까지 나돌면서 반도체는 ‘미운 오리 새끼’였다. 합리화 과정에서 반도체도 살생부 도마에 올랐다가 막판에 간신히 빠졌다. 이 과정에서 77세의 삼성 이병철 회장이 “삼성 반도체에 대해 잘 써 달라”며 주요 일간지 편집국장들을 초청해 설득하는 황혼의 마지막 투혼을 불살랐다. 그런 후 이병철 회장은 이듬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세계적 불황국면에서 반도체 포기를 거부한 이건희

이병철 회장이 타계하자 삼성 간부들은 1987년 말 작심하고 이건희 신임 회장에게 “반도체를 포기하자”고 건의했다가 엄청 야단을 맞았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의 미래 예견력과 결단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천만다행으로 삼성반도체는 1988년부터 흑자로 돌아서 황금알을 낳기 시작한다. 만일 그때 삼성이 반도체를 포기했다면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을 수 있었을까?

경제는 무균의 진공관 속에서 키워지는 게 아니다. 히트 상품은 거친 시장 속에서 온갖 경쟁을 이겨내며 자란다. 대한민국의 세계시장 1위 상품은 기업들의 ‘사업보국(事业报国)’ 정신에서 태어난다. 삼성은 반도체가 흑자를 낸 1988년 아날로그 무선전화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모토로라에 밀려 7년간 적자행진을 이어가다 1994년에야 애니콜로 판세를 뒤집는다. 기업들은 이처럼 언젠가 필요한 사업이라면 오랫동안 적자를 감수하며 때를 기다린다. 이것이 기업의 저력이며 경쟁력이다.

한국의 반도체 사업이 세계 시장을 주도해 가고 있다. 여기에 4차 산업혁명이 전 세계 곳곳에서 혁신의 깃발을 내걸고 전 산업에 불어 닥치고 있다. 반도체는 바로 4차 산업혁명의 쌀이다. 쌀 없이 생존할 수 없듯이 반도체 없이 4차 산업혁명은 일어나지 않는다.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것은 정부 아니고 기업

이러한 산업혁명은 정부가 주도해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산업혁명의 주인공은 바로 기업이다. 기업의 본능적인 생태는 상어와 닮았다. 상어는 가만히 있으면 물속에서 질식해 숨진다. 기업들도 사업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4차 산업혁명도 정부가 개입해서 주도하기보다는, 드론이 마음대로 날고 줄기세포를 자유롭게 실험하도록 규제를 풀거나 교육을 개혁해 산업 기초를 다지는데 역할이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자동차는 1801년 영국에서 처음 나왔다. 하지만 마차조합과 마부들을 위해 만든 ‘적기조례’가 1889년까지 지속된 게 문제였다. 이 조례에 의해 영국 자동차는 빨간 깃발을 든 신호수(手)를 뒤따라가야 했고, 말과 마주치면 반드시 멈춰야 했다. 19세기 내내 영국 자동차는 걷는 것보다 느렸다. 이에 비해 독일·프랑스·미국은 고속도로를 만드는 등 자동차들이 마음대로 질주하게 했다. 이러니 영국의 자동차 전문가들이 모조리 빠져나가고 영국의 자동차 산업이 완벽하게 몰락한 것은 당연하다. 지금에도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영국제 변변한 자동차가 없는 게 사실이지 않는가? 우리 정부는 영국 자동차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몰락 직전에 대반전을 해낸 미국 실리콘벨리

지금 미국은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있다. 그러나 불과 15년 전만해도 세계중심축은 서에서 동으로 움직이고 있다고 했다. 그 중심은 일본·한국·중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패배주의에 젖어 있었다. 당시 소니·파나소닉 등 일본 제품이 세계를 장악했고 “미국은 일본에 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미국은 실리콘벨리에서 개방과 공유의 플랫폼 정신으로 혁신을 이루었고, 결국은 폐쇄적인 일본의 제조업 문화를 압도했다. 미국이 다시 세계를 리드해 가는 나라로 거듭난 것이다. 그것도 아주 짧은 시간에.

반도체와 원전기술의 미래에 대한 한국정부와 국민의 선택?

그런데 우리나라는 한 기업의 총수가 영어의 몸으로 기업에서 손을 떼고 있는지도 1년이 다가오고 있다. 한 법원의 판사의 판결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꿀 만큼 삼권분립이 세계에서도 인정하는 민주주의 국가가 됐다. 또 한편에서는 세계에서 제일 앞서 있는 원전기술이 국민들의 시험대에 올라 인도 원전 시장을 일본이 통채로 삼키고 있는데도 그대로 모른체 지나가려 하고 있다. 우리의 반도체 황금시대가 언제까지 갈 수 있을까? 이제는 우리 정부가 국민에게 답해 줄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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