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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듣다와 보다

기사승인 2019.04.05  1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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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우리는 감각 중에서 어떤 감각에 가장 의존할까요? 어떤 감각을 가장 믿게 될까요? 아무래도 시각과 청각이 아닐까 합니다. 미각이나 후각, 촉각도 중요한 감각이지만 폭넓게 믿음을 주는 감각은 보고 듣는 것이겠죠. 우리의 생활 속에서도 보는 일과 듣는 일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사람을 만나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을 듣습니다. 주로 보고 듣는 일입니다. 물론 삶속에는 미각, 후각, 촉각도 함께 있기는 하겠지만 말입니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는 말은 우리가 자주 듣는 말입니다. 100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는 말이니까 보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듣는 감각이 직접 보는 것만 못하다는 말이죠. 저는 이 말을 보면서 듣는 것보다 보는 것이 낫다는 말은 사실 믿음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들었더라도 보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만 보이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귀에 들리는 것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게 믿음입니다. 그게 사랑이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관음보살(觀音菩薩)이나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은 그런 경지를 보여줍니다. 소리를 보는 경지입니다. 관음이나 관세음은 소리를 본다는 말입니다. 기독교 구약성경에서 욥은 회개하면서 귀로 듣던 하느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경지일 겁니다.

일반적으로 ‘들어서 아는 것’과 ‘봐서 아는 것’은 믿을 수 있는 정도에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본 것에 대해서는 더욱 확신이 섭니다. ‘내가 들었어.’와 ‘내가 봤어.’에는 신뢰에 차이가 있습니다. 들었다고 해서 다 사실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섞여 들어올 수 있습니다. 잘못된 소식을 믿게 되는 경우도 있겠죠. 물론 보는 것도 전부 사실은 아닙니다. 선입견(先入見)이나 편견(偏見)이라는 말은 우리가 얼마든지 잘못 볼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관점은 대상을 비뚜로 보게 합니다.

저는 듣는 것과 보는 것의 차이에서 또 주목하고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보지 못하였더라도 보는 것처럼 믿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내 눈앞에 보듯이 여긴다는 말은 믿음의 경지를 보여줍니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 나오는 여대목전(如對目前)은 그런 경지입니다. 이 말을 해석할 때 ‘마치 눈앞에 보이는 것처럼’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박성배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믿음에서 나오는 번역이 아닙니다. 믿음의 경지라면 ‘마치’라는 수식어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같다’라는 말도 필요하지 않은 경지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제가 앞에 쓴 ‘보듯이’도 틀린 말입니다. 본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 아니라 본 것입니다. 그냥 봤다고 해야 하는 경지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경지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믿는다는 말조차 필요 없는 경지입니다.

믿음이 없고 확신이 없을 때 우리는 그저 듣는 경지를 사는 겁니다. 이런 경우에는 들어도 믿지 못합니다. 의심이 가득하니까요. 이 때 의심은 좋은 의심이 아닙니다. 부정의 생각이 가득한 의심이죠. 저는 의심에는 사랑의 의심이 있고, 미움의 의심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생기면 우리는 보는 경지를 살게 됩니다.

부모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우리는 보지 않았어도 믿습니다. 나를 속일 분이 아니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듣지 않아도 보는 경지를 살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감각적으로도 보고, 후각적으로도 보고, 미각적으로도 봅니다. 만져 보고, 들어 보고, 맡아 보고, 맛도 봅니다. 저는 보는 세상, 믿는 세상, 서로 사랑하는 세상을 살고 싶습니다.
 

조현용 교수 iiejhy@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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